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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형 큐티, "귀납법적 훈련, 질문이 핵심이다”

질문이라는 문제는 제자훈련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통해 삶이 변했다. 사역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질문을 사전에 몇개를 준비해서 간다. 어떤 면에서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
훈련생은 고정 타겟이 아니다. MOVING 타겟이다. 질문을 만들 수 있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어떤 환경에서도 빨리 달릴 수 있는 순발력을 가지려면 평소에 질문을 많이 만들어 보라.
그래서 Q형 큐티를 말하고 싶다. 성도들이 질문을 2-3개만 해도 묵상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본다. 큐형 큐티는 QUESTION이다.
연구: 금방 사전에서 찾을 수 있는 것
묵상: 조금 더 생각해서 찾아보는 것
결단: 삶의 목표
적용: 삶의 구체적인 PLAN
처음에는 질문이 있는 큐티집을 이용했다. 그러다가 설명만 있는 큐티집을 보니까 질문을 한 개의 PARAGRAPH 당 20개 정도 만든다. 엄청나게 깊이 들어간다.
질문은 말씀을 파는 ‘삽’과도 같다. 따로 신학교 때 배운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 D형에 + 질문을 하면 Q형이 된다. 묵상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게 되면 말씀의 광맥을 깊은 데까지 파 내려가게 된다.
큐티는 방법이 아니다. 아이들은 숟갈질 못해서 밥 안 먹는 것 아니다. 배고프지 않아서 안 먹는 것이다. 말씀의 맛이 얼마나 달고 좋은지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더라.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러나 제자훈련 결과 ‘PUSH’하니까 되더라.
요즘 ‘로마서’ 얼마나 힘든가? 그러나 질문을 5-6개만 만드는데도 역사가 일어난다.
제자훈련 교역자들이 평소에 Q형 큐티를 한다면, 질문에 대한 순발력은 저절로 길러진다.
평신도들이 질문을 만들지만 대답을 못하는 경우 어떻게 하는가? 질문을 방법론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질문을 드린다.
처음에는 무작정 질문해본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GOLD 질문, STONE 질문을 구별해낼 수 있다.
큐티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질문에 답을 안 해주신 적은 없다.
예1) 에스라/ 느헤미야의 경우: 포로된 자들의 이름이 쭉 나온다. 그런데 그것을 성실하게 반복해 나가다보니까 오히려 이 이름들이 다른 곳에서의 강의에 요긴하게 쓰인 적 있다.
예2) 감림산 교역자 수양회 갔을때, 그 다음날 아침 습관을 따라 큐티했다. 오늘 본문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는 마음으로…. 그런데 그 날 아침 벼락치는 소리를 들었다. 잠이 확 깨더라. 환경이나 여건을 탓하지만, 신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성실하게 대답하신다.
예3)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다. 잘 만들어서 좋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잠언 읽는 동안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다.
우리가 신실하게 앉으면 하나님이 신실하게 말씀하신다. 만일 앉기 싫으면 뒹굴기라도 하라.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고 뒹굴면 하나님은 견디실 재주가 없으시다.
내가 큐티의 방향을 바꾸니까, 주님께서 내 삶을 바꾸셨다. 나는 솔직히 성령파다. 그러나 큐티를 통해서 균형을 잡게 하셨다. 말씀의 자리로 깊이 나아가게 하셨다.
간단한 질문 하나가 내 사역의 지경을 바꿔 주었다. Q형 큐티를 적용해 보라. 질문을 하루에 20개씩만 만들어 보면 말씀 보는 깊이가 1년 안에 달라질 것이다.
위대한 질문을 만들려고 하지 말라(위대한 결단과 적용을 만들려고 하지도 말라).
질문에는 'WHY?'라는 질문이 유용하다. 이 질문을 던지다보면 하나님의 의도가 나온다. 하나님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된다.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으니까 성경이 다른 책으로 보였다. 'HEART OF GOD'이 보였다. INTIMACY라는 단어도 새롭게 체험했다.
큐티 오래 하는 사람은 다들 왕자병, 공주병에 걸린다. 하나님이 나만 사랑하시는 것 같다.
결혼할 때 '이 여자와 함께 살면 어떻게 될 것인가?' 논리적으로 따지고 결혼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감정을 따라 한다.
정적인 면과 의지적인 면이 둘 다 너무나 중요하다. 전인격적인 면이 소중하듯 큐티도 이렇게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감정이 드러나면 우리의 심장이 떨린다.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성실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니까 하나님께서 큐티의 방향을 바꿔주셨다. 마지막 때인 지금, 엄청난 기름부음이 준비되고 있다.
Q형 큐티의 실제 예를 들어보겠다.
느헤미야 2장 1-5절을 읽고 질문을 만들어보자.
2:1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 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2: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왜 느헤미야는 왕의 앞에 술을 드렸는가? 왕이 느헤미야의 슬픈 기색을 어떻게 볼 수 있었는가? 느헤미야의 마음에 있던 근심은 무엇이었나? 느헤미야는 왜 하나님께 기도했는가? 무엇을 기도했는가? 묵도라는 것은 어떤 기도를 말하는가?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하나님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하신 이유는? 느헤미야의 요구는 무엇이었나? 과연 느헤미야는 이 대답을 바로 지금 생각한 것일까?
수색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했다.’ 왜 두려워했나? 죽을까봐? 왜 죽을까? 왕궁에서 기쁨조가 표정이 기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죽인다. 왕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슬픈 자가 있다면 죽였을 것이다. 왜 죽을 줄 알면서 슬픈 감정을 감추지 않았을까? 느헤미야가 그만큼 예루살렘을 향한 마음이 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중요하다.
왜 느헤미야는 왕의 대답에 즉각 대답하지 않고 기도했을까? 하나님을 왜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했을까? 왜 왕의 마음에 느헤미야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다.
양복점에서 본을 뜬다면, 본은 말씀이고, 그 바깥 부분은 나의 삶, 적용은 그 차이를 줄여주는 것이다.
보통 내용 관찰이나 연구와 묵상 안에서 질문을 만든다. 그 질문에 답하면서 이 부분이 풍성해진다.
그러면 처음부터 이런 Q형 큐티를 할 수 있나? 골격 세우는 데 몇달 걸린다. 심화되는 데는 한참 걸린다. 제자반 하면서 8월 내내 10 AM‐4 PM 동안 큐티 웍샵을 했다. 20년 걸려서 할 것을 1년 걸려서 했다.
연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안 좋은 것 연습과 좋은 것 연습이다.
연구와 묵상을 SHARE하게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묵상하게 한다.
옥 목사님 제자훈련 20년 기념행사 때 느낀 것인데, 광인론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열심론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크신 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와는 상관없다. NOT ME...
단어를 가지고 큐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나? 보통 사람들은 옛날에 들었던 그 단어의 의미를 가지고 그날 큐티를 적용하려고 한다. 그날 새롭게 주시는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은 ‘수심’ 쪽으로, 어떤 사람은 ‘기도’ 쪽으로 FOCUS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 PARAGRAPH로 큐티하라. 한 단어가 튀어 오르는 경우도 있다.
숙제 검사는 어떻게 하는가? 인터넷에 올리게 한다. 이상하면 불러서 이야기한다.
결국 큐티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 삶에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에게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것이 대강령(SUMMARY)이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이라고 본다.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평신도들도 관심이 많다. 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더욱 큰 친밀함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것, 이것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먼저는 밥 먹여주고, 그 다음에 알아서 먹게 해 준다. 이것을 병행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시려는 것의 1000분의 1도 받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실제로 엄청나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DEVOTION이 있다면,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 김홍장 전도사(남가주사랑의교회, 미주 국제제자훈련원 총무), 남가주사랑의교회 교역자 제자훈련 클리닉 특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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